지하철에서 생긴 일
지하철에서 생긴 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은 전동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언제나 활기차다.
"이번 열차는 매우 혼잡하오니 다음 열차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흥! 이번 열차를 꼭 탈 거거든?"
그런데 막상 열차가 도착하니 자신이 없어진다.
도대체 발 한짝 들여놓을 틈이 없어보였다.
그 와중에도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사람은 모두 올라탄 상태였고
출입문을 닫겠다는 운전사의 두 번째 엄포가 귓전을 때린다.
하필 플랫폼에 혼자 남게되니, 마치 이 열차를 놓치면 사회에서
낙오되어 한 발 뒤처지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마저 들었다.
순간 망설이며 전동차 안을 보니 어느 아주머니가 아기를 업고 있었고
아기는 붐비는 사람들로 짜증이 났던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내가 타면 저 아기가 더 불편하겠지?"
"미안하구나, 아가야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만은 않단다."
전동차 안으로 몸을 밀어넣고 본능적으로 출입구 쪽으로 돌아서니
뒤에 있던 남자들이 공간을 내준다. 역시 +와 +는 반발력이 있나보다.
몇 정거장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역이든가 군인이 들어오더니 내 앞에 등을 돌리고 선다.
그의 어깨 위에 다이아몬드 하나가 놓여있다.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 교과서에서?)
그는 바로 앞 자리가 비어도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선을 무심히 창 밖으로 고정한 채 성냥개비처럼 서 있었다.
강남 근처였든가.. 전동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유독 많이 올라탔는데
그 중에 묘령의 늘씬한 아가씨가 들어온다.
20대 중반 쯤 되었을까.. 무릎을 살짝 덮은 순백의 원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이목구비가 뚜렸하고 눈이 맑은 그녀는 군인의 바로 앞쪽 빈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목석같이 서 있던 군인이 움찔하더니 뒤로 약간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녀와 군인과 내가 차례로 한 뼘 간격으로 서 있었는데 군인이 뒤로 물러섰으니
그만큼 그녀와 군인 사이는 멀어진 대신 군인과 나의 간격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앞뒤 좌우가 사람들로 빽빽한 좁아터진 출근길 전동차 안에서 피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그렇게 서 있는데 어디선가 아련한 향수 냄새가
코로 스며든다. 그것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이름모를 야생화의 향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방금 들어온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향기 같아 나도 모르게 군인의 어깨 너머에
있는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 쪽으로 주위에서 눈치 채지 않도록 조금씩 코를 들이밀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한강 다리로 진입하던 전동차가 조금 흔들렸고 그녀의 몸도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찰나!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군인이 화들짝 놀라더니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 것이었다.
그러니 바로 뒤에 서 있던 나는 그.. 뭣이냐.. 참으로 민망하지만..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군인의 엉덩이로 강하게 압박당하면서 그 물컹한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책없는 충격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눈에 촛점을 잃고 잠시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하필이면 그녀의 머리칼에서 전해오는 향기를 따라 눈을 지그시 감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입꼬리가 살살 올라갈 때 사전 예고도 없이 아랫도리에 기습을 하다니..
도대체 군인은 왜 그랬을까?
그녀와 한 뼘 이상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임에도 꼭 그렇게 과격한 대응을 했어야
했나? 뒷사람 생각도 해 줘야지..ㅜㅡ
다리를 건너고 승객들이 일부 내리길래 반대편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도대체 이 찜찜한 기분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그래, 오늘은 점심때 대중탕에 가서 목욕을 해 보자!
샤워 물줄기로 물컹한 기분까지 씼겨 내려가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