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

김남조 시모음

세가지빛 2009. 12. 8. 23:04

 

너를 위하여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

설일(雪日)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가고 오지 않는 사람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하여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그대 있음에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

가난한 이름에게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까


검은 벽의

검은 꽃 그림자 같은

어두운 향로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겨울 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로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들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라는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에

울면서 눈감고

입술을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

고 백


열. 셀때까지 고백하라고

아홉. 나 한번도 고백해 본적 없어

여덟. 왜 이렇게 빨리세?

일곱. .....

여섯. 왜 때려?

다섯. 알았어. 있잖아

넷. 네가 먼저 해봐

셋. 넌 고백 많이 해봤잖아

둘. 알았어

하나반. 화내지마 ..있잖아

하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