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린 양을 구원하소서

세가지빛 2010. 1. 6. 22:17

어린 양을 구원하소서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봄볕이 따뜻한 어느 토요일 오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집어들고 산상설교 등의 내용에 심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어린 마음에도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원하나이다" 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 야, 너 나랑 교회 갈래?
나   : 교회? 글쎄...

 

친구: 잠깐 들렀다 가자
나   : 집에 가봐야 되는데..

 

친구: 이번 주까지 한 명 전도해야 돼. 부탁이다 오늘만 가주라
나   : 집에 가봐야 되는데..

 

친구: 오늘은 빵도 줄 거야
나   : 그럴까..^^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널찍한 마루바닥에 10명 정도의 또래 애들이 있었고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서니 친구가 양말도 벗으라고 했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나만 안 벗을 수도 없었다.

어지간히 애들이 모이자 마루에 다섯 명씩 줄을 세웠는데 나는 친구와
함께 두 번째 줄에 섰고 목사님이 들어와 마이크를 잡고 설교를 시작하셨다.

 

잠시 후 목사님이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셨고
친구녀석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 치면서 무릎을 꿇으라는 시늉을 했다.

헉!! 나는 아차 싶었다.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발바닥이 뒤에서 다 보일 텐데...

 

아아, 그때 내 발바닥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 아침 한창 단잠에 취해있다가 발바닥에서 전해오는
엄청난 가려움에 잠이 깨고 말았다.

 

모기에 물린 것이다. 발바닥은 아무리 긁어도 미치도록 가려웠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눈에 불을 켜고 모기를 잡아서는 모기의 몸체와
다리를 분리하여 발바닥에 올려놓고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그리고 그 옆에 빨강 사인펜으로 "능지처참"이라고 쓰고

모기에 물려 발갛게 부어오른 곳에는 빨간약(머큐로크롬)을 발라주었다.

설마 발바닥을 공개하는 상황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참으로 당황스럽고 난감했지만 혼자 서있을 수도 없었으니,
할 수 없이 다른 애들과 같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숙여 엎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큭.. 크흑.. 뒷줄에 있던 애들이 배를 움켜잡고 쓰러진다.

힐끔 뒤돌아 보니 어떤 단발머리 여학생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옆으로 누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행여 목사님이 알아챌까 사력을 다해 새어나오는 웃음을

틀어막았고 목사님의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잠시 조용한가 싶다가도

간헐적인 웃음의 파동이 이어지곤 했다.

 

너무나 창피하여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 일이 있은 후 다시는 그 교회에
나갈 수 없었다.

 

그해 여름,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낚시도구를 챙겨 버스를 타고 개천으로 놀러 갔다.

얕은 곳에서 견지낚시를 하다가 햇볕이 뜨거워 몸을 식힐 겸 수영을 하기로
하고 친구녀석과 깊은 물쪽으로 갔다.

 

먼저 친구가 수영으로 건너간 것을 확인한 후에 나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팔다리를 휘저어도 생각만큼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친구는 자유형이었고 나는 개구리헤엄이었다.

 

처음엔 "허헛 이것봐라, 물살이 나를 떠미네^^" 하며 여유롭게 생각했지만
한,두 모금 물을 먹은 후에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고

한 번, 두 번, 세번 째까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짧은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물속에서 속절없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점점 숨이 막혀오고 어릴 때 식구들끼리 바닷가로 놀러가서 김밥 먹던 일,
어머니 앞에서 개다리춤 추며 재롱떨던 일.. 그런 장면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 문득 친구집에서 읽었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라 마지막으로 기도를 해보기로 했다.

"예수님,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사 죽어가는 어린 양을 구원하소서"

 

기도를 끝내기 무섭게 뭔가 발끝에 닿는 것이 있었다. 바위였다.

나는 온 몸의 남은 힘을 발끝에 모아 물가쪽으로 몸을 던졌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 나왔냐는 친구의 물음에 바위를 딛고 나왔다고 하자 친구가
어떤 바위냐고 되묻는다.

 

몸을 돌려 개천을 바라보고는 일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만 해도 물이 맑아서 개천 바닥 2M까지는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모래와 자갈만 있을 뿐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물을 먹어서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귀가 멍멍하여 잠시 자리에 앉아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더운 바람에 실려온 풀내음을 맡으니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뒤로 용돈을 모아 작은 성경책을 구입하여 시편을 제외한 신약을

틈틈이 딱 한번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부흥회하는 날

헌금 액수에 따라 목사님의 목소리 크기가 달라진다든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를 존경하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존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간디의 말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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